남경운금은 우리나라 우수한 전통문화의 걸출한 대표입니다. 운금은 멋있기로 하늘의 구름과 노을에 비긴다고 하여 이름을 얻어 왔으며 그 역사 또한 1580년에 달합니다. 고대의 사직물 중 “금” (锦)은 기술 수평의 최고직물을 대표합니다. 남경의 운금은 역대이래 공예예술의 장점을 모아 성도의 소금(蜀锦), 소주의 송금(宋锦), 광서의 쫭금(壮锦)과 더불어 “중국4대명금”으로 불리웁니다. 그 중 남경의 운금은 풍부한 문화와 기술로 “동방귀보”(东方瑰宝), “중화일절”(中华一绝)로 불립니다. 운금은 가로 5.6미터에, 높이가 4미터, 세로가 1.4미터인 목질제화기 (提花机)에서 아래위에 있는 두 사람이 서로 합작하여 조작하고 생산해 내어 예로부터 “촌금촌금”(寸锦寸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운금을 짜아 낼때 한사람이 기계에 앉아 순서에 따라 실을 당기기만 하면 되는데 그 사람을 “꽃당기공” (拽花工)이라고 합니다. 기계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은 “직수”(织手)라고 하는데 일단 “통경단위”(通经断纬)기술로 (세로 된 실은 흔히 수자가 고정적이 아닌 채색 비단실로 이어졌음) 오색영롱한 운금을 짜아낸답니다. 그들의 앞에 펼쳐진 폭이 바로 LCD모리터와 같습니다. 이러한 공예는 지금에 까지 이르러 기계로는 대신할수 없습니다. 운금은 제조 공예가 초월하여 위에 소개한“도화결본”(挑花结本), “통경단위” 기술외에 갑금직은(夹金织银) 역시 다른 하나의 기술입니다. 직물은 부귀를 나타내고 금벽이 휘황하여 황실의 수요를 만족시켰습니다. 오래동안 궁정의 필수품으로 써왔기에 기술이 섬세하고 제작중에서도 재료를 바꾸지 않았으며 후에는 운금의 예술이 도드라져 직물예술의 최고에 달하였습니다. 운금으로는 주요하게 “직금”(织金)(황금을 박으로 두드림, 실로 써려서 선으로 비빔), “고금”(库锦), “고단”(库缎) “장화”(妆花)등 4대 품종이 있으며 황제의 룡포나 황후의 봉황옷, 그리고 빈비들의 화려한 의복 또는 궁정의 장식물로 자부동이나 요, 아니면 베게 등 실용품으로 쓰입니다. 운금은 또 조정의 선물로 외국의 군주나 사신에게 드리며 대신이나 공을 새운 사람에게 상으로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