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천상과 명덕당편액

【옛 舗:크다  작은
문천상,자는 송서(宋瑞)이고,호는 (문산)이며 남송보우(宝祐)4년(1256)에 진사에 합격하였으며 관(官)이 우승상(右丞相) 겸 수밀사(枢密使)였습니다. 원나라군에 반항하여 포로로 되었으나 적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인생은 자고로 뉘 아니 죽으랴, 일편단심 건사하여 천하에 빛내리”라는 시구로 애국의 마음을 표하였습니다. 상흥(祥兴)2년(1279)에 문천상은 석방하여 원나라의 도읍으로 가는 도중에 금능을 지내었는데 그 때 학궁에 “명덕당”이라고 편액을 내렸습니다. 송나라 이후의 학궁의 제도에 따른다면 “명륜당”(明伦堂)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이 편액은 민적영웅 문천상이 썼는바 원나라 이후의 여러 조대도 모두 보류하였으나 함풍(咸丰)시기 전쟁으로 파손되었고 동치(同治)년간에 증국번(曾国藩)이 다시 써서 편액을 달았습니다. 《남경문헌》(南京文献)의 기재에 따르면 “명덕당, 예전에는 문청상의 정서(正书)였고 지금은 증국번의 전서(篆书)입니다. 오로지 그 당액(堂额)이 문산의 손에서 나왔기에 후에는 모방하지 못하여 ‘명륜’이라 하지 않고 ‘명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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